2024. 9. 13. (금) 19:30 대구콘서트하우스 그랜드홀
위대한 작곡가도 서툴렀던 처음은 있다. 올해로 탄생 200주년을 맞이한 화성법과 대위법의 대가, 안톤 브루크너(1824. 9. 4 ~ 1896. 10. 11)도 예외가 아니다.
백진현 상임지휘자가 이끄는 대구시립교향악단(이하 대구시향)은 오는 9월 13일(금) 오후 7시 30분, 대구콘서트하우스 그랜드홀에서 열릴 브루크너 탄생 200주년 기념 ‘제508회 정기연주회’에서 그동안 실연으로 듣기 어려웠던 브루크너의 초기 교향곡인 d단조 일명 ‘0번’을 연주하며 그의 시작을 조명해 본다.
이 외에도 헝가리 작곡가 코다이의 ‘갈란타 춤곡’, 메조소프라노 백민아와 함께하는 스페인 작곡가 파야의 발레 모음곡 ‘사랑은 마술사’를 통해 각 나라의 민속 선율이 흐르는 신선한 무대로 꾸밀 예정이다.
이번 공연의 주인공인 안톤 브루크너는 19세기 후반 말러, 시벨리우스와 함께 교향곡 발전에 가장 큰 업적을 남긴 인물이다. 오스트리아 린츠 근교의 안스펠덴에서 교사 겸 오르가니스트의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어릴 때부터 남다른 음악적 재능을 보였다.
신앙심이 깊은 집안에서 성장하며 종교음악으로 음악을 처음 접했고, ‘장엄 미사곡’(1854)과 같은 작품을 발표하면서 당대 저명한 음악 이론가 지몬 제히터의 제자가 됐다.
1861년, 37세까지 제히터의 문하에 있던 브루크너는 마흔을 바라볼 무렵에야 처음으로 교향곡 작곡을 시도했다. 그는 f단조의 ‘습작’ 교향곡(1863)과 d단조의 교향곡 ‘0번’을 포함해 미완성으로 끝난 “교향곡 제9번”까지 총 11개의 교향곡을 남겼다.
이 가운데 이번 공연에서 만나볼 교향곡 d단조 ‘0번’은 작곡가 스스로 ‘단순한 시험 작품일 뿐 아무 가치가 없음’이라고 악보 표지에 써뒀을 정도로 세상에 내놓길 꺼렸으나 브루크너의 초기 교향곡으로서 갖는 가치는 충분하다.
교향곡 d단조는 후대에 ‘0번’이라 부르게 됐지만, 사실 교향곡 제1번 작곡 이후 완성됐다. 창작의 계기가 되었던 베토벤 교향곡 제9번의 영향을 강하게 느낄 수 있다. 총 4악장 중 베토벤의 영향은 특히 1악장과 4악장에서 두드러진다.
끝을 향해 점차 고조되는 에너지, 일정 음형이 같은 음높이로 반복 연주되는 진행 등은 베토벤의 교향곡 제9번을 떠올리게 하며 브루크너의 이전 교향곡과 차이를 보인다.
브루크너는 1864년 상당 부분 완성된 초고를 1869년 대폭 수정하여 완결되자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 초연을 맡기기 위해 수석 지휘자 오토 데소프를 찾아갔다.
이 악보를 본 데소프는 “1악장의 주제 선율은 어디 있냐?”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고, 이후 브루크너는 악보를 깊이 묻어두었다고 한다. 그가 죽기 1년 전, 청년 시절 작곡한 작품을 정리하던 중 발견되어 뒤늦게 ‘0번’이란 별칭을 얻었고, 결국 브루크너 생전에 연주되지 못한 채 1924년 오스트리아 클로스터노이부르크와 빈에서 처음 연주됐다.
한편, 이날 공연은 코다이의 ‘갈란타 춤곡’으로 시작한다. 헝가리 민속 음악을 집대성한 코다이는 1933년 부다페스트필하모닉협회 창립 80주년 기념작을 위촉받고 어린 시절 살았던 헝가리 동북부 마을 갈란타 지역의 노래와 춤을 떠올렸다.
작곡에는 1800년 빈에서 출판된 헝가리 집시 춤곡 모음을 참고했으며, 여기에는 갈란타의 몇몇 집시들에 의해 작곡된 춤곡도 포함돼 있었다. 이 중 다섯 곡을 골라 단악장으로 편곡해 1933년 10월 부다페스트에서 도흐나니의 지휘로 초연됐다.
‘갈란타 춤곡’은 낭만적인 스타일로, 1930년대 작곡된 다른 음악에 비해 비교적 직설적이면서 화음도 덜 복잡하다. 민속 춤곡답게 생동감 있는 리듬과 민족의 정서가 녹아 있는 선율이 인상적이다.
전체적으로 느린 부분과 빠른 부분이 대비를 이루는 18세기 후반 헝가리 신병 모집 연회에서 추던 민속 춤곡인 ‘베르분코시(Verbunkos)’를 바탕으로 했다.
이어서 풍부한 성량과 따듯한 음색으로 청중을 사로잡는 메조소프라노 백민아와 파야의 발레 모음곡 ‘사랑은 마술사’를 선보인다. ‘삼각모자’로 유명한 파야 역시 스페인의 민속적인 선율과 리듬 등을 작품에 가득 담았다.
파야는 파리에서 7년간 머물며 드뷔시, 라벨, 뒤카 등 프랑스 인상주의 작곡가의 영향을 받아 ‘7개의 스페인 민요’(1914), ‘스페인 정원의 밤’(1916) 등을 작곡했고, 제1차 세계대전 발발과 함께 1914년 마드리드로 돌아와 처음 완성한 곡이 바로 ‘사랑은 마술사’이다.
마드리드의 전설적인 집시 출신 무용가 파스토라 임페리오의 의뢰로 작곡된 이 작품은 안달루시아 전설을 바탕으로 그레고리오 마르티네스 시에라와 그의 아내 마리아 레하라가 대본을 구성했다. 질투심 강한 남편이 죽고 이 유령에 시달리는 아름다운 미망인이 집시 아가씨의 도움으로 망령을 물리치고 새로운 사랑을 이룬다는 내용이다.
1915년 임페리오 주연으로 1막 2장의 발레가 초연되었는데 실패로 끝났다. 하지만 음악에 대한 평은 좋아서 파야는 원곡의 소규모 앙상블을 오케스트라 편성으로 확대해 더 풍부하고 다채로운 사운드를 가진 발레 모음곡으로 완성했다.
‘서곡과 정경’, ‘동굴에서’, ‘유령’, ‘공포의 춤’ 등 13개의 짧은 곡으로 이뤄져 있다. 몇 곡씩 묶어 크게 6부분으로 나뉘고, 곡 중 ‘불의 춤’이 가장 유명하다. 특히 원작의 대사를 없앤 대신 메조소프라노의 짧은 노래가 몇 차례 등장한다.
메조소프라노 백민아는 계명대 성악과, 이탈리아 로마 산타 체칠리아 국립 음악원 성악과 및 동 음악원 합창(전문) 과정을 졸업하고, 로마 음악 예술 아카데미, 로마 아레나 국제 음악 아카데미에서 각각 성악 3년 과정(디플로마)을 이수하는 등 음악의 지평을 넓혀 나갔다.
이탈리아 라벨로, 줄리오 네리 등 다수의 국제성악콩쿠르에 입상한 그녀는 바를레타 국제음악콩쿠르 1위, 바르셀로나 비냐스 국제성악콩쿠르 입상, 미라벤 이 마그란스 국제성악콩쿠르 3위 등을 수상했다. 국내외에서 오페라 주·조역으로 활약하고 있으며 대구시향, 청주시향, 충북도향 등의 오케스트라와 대구, 창원, 경주, 구미 등의 시립합창단과 협연했다.
연주를 앞두고 백진현 상임지휘자는 “대구시향은 지난 11월 브루크너 교향곡 제1번을 연주한 데 이어 9월 4일 그의 200번째 생일을 기념하며 그다음 작품인 교향곡 ‘0번’을 준비했다. 브루크너의 교향곡은 주로 4번, 5번, 6번, 7번 등이 자주 연주되는 데 그간 ‘0번’은 관객이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비록 작품의 완성도 면에서는 중후기 교향곡보다 아쉬운 점이 많지만, 이후의 대작을 예고하는 브루크너의 다양한 시도를 확인할 수 있는 뜻깊은 작품이다”고 선곡의 배경을 설명했다.
또 “헝가리와 스페인의 전통 선율과 리듬이 물씬 느껴지는 이색적인 무대로 새로운 감동을 전하겠다”며 소감을 전했다.
대구시향 ‘제508회 정기연주회’는 일반 R석 3만 원, S석 1만 6천 원, H석 1만 원으로, 대구콘서트하우스 홈페이지, 인터파크(1661-2431) 등에서 예매할 수 있다.
예매 취소는 공연 전일 오후 5시까지 가능하다. 모든 할인의 중복 적용은 불가하며, 공연 당일 티켓 수령 시 반드시 할인에 따른 증빙자료를 제시해야 한다. 초등학생(8세) 이상 관람할 수 있다.
한편, 대구시향은 광주예술의전당 초청 ‘GAC 특별기획 달빛동맹 시리즈Ⅰ’로 오는 9월 24일(화) 오후 7시 30분 광주예술의전당에서 ‘대구시립교향악단’s 브루크너‘라는 제목 아래 이날 연주한 레퍼토리로 광주에서 한 번 더 공연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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